1 중관학(마하야나 중관사상) 자체가 ‘바라밀의 축적 없이도 곧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중관학은 바라밀(지혜·윤회사상·자비 등 공덕)을 비롯한 모든 수행법마저도 본질적으로는 공(空)하다고 봅니다.
바라밀과 공(空)
중관학의 핵심은 모든 법은 공함(무자성, 니르바나와 번뇌·업·윤회조차 이분법을 초월한다는 뜻)을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음 자체가 곧 보살행(바라밀)입니다.
따라서 바라밀을 ‘쌓아야 할 일종의 실체적 공덕’으로 고집하지 않고, 오히려 바라밀 행위가 모두 공적임을 체험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집착이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일생 성불(sā prajñaptir upādāya pratipatta)
나가르주나(용수)는 보살이 붓다의 공사상(空思惟)을 ‘인과(因果)의 이름붙임(명언)’이라 규정하면서, 그 깨달음의 순간순간이 바로 붓됨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6·10 바라밀을 한 번에 완성할 수 있다든가, 아무런 수행 없이도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은 중관 전통의 교설에는 없습니다.
수행의 두 길
점진행(승보→반야바라밀 축적→보리심 공고)
‘순간적 중도 깨달음’(열반과 선정·정법이 둘이 아니요 즉시 붓다)
다만 중관학에서는 둘 사이를 개별 경전에 기초해 논하고, 체계적으로는 점진행을 여전히 강조합니다.
2 개인적인견해(서적들에 의한 기억을 토대로)
a 오랜 세월의 바라밀이 뛰어나다---->바른부처님,솔로부처님,상수제자아라한,대제자아라한 등
b 바라밀이 뛰어나지않다
ㄱ 그 생에 벼락치기와 같이 열심히 단기간 계,정,혜를 수련하여, 일반적인 아라한이 됨
ㄴ 혜를 수련하지 않은 아나가미(불환과)
ㄷ 다음생을 기약하며 소따빠디(물에발을디딘자) 등에 만족하며, 7생이내에 아라한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