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극우 정치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안호상은 독일 예나 대학 유학 시절, 히틀러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인종주의 핵심인 순혈주의를 내면화했습니다. 해방 후 그는 이승만 정권의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이를 바탕으로 ‘일민주의’라는 극우 이데올로기를 창시했고, 이는 나치의 순혈주의를 모방한 ‘단일민족’ 담론과 강력한 국가 중심 민족주의를 결합한 체계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국민의힘에 의해 완성된 ‘후기 파시즘 체제’의 기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일민주의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군사독재 시절 ‘병영국가’ 건설로 계승되었고, 국민을 인간 그자체가 아닌 ‘산업전사’라는 이름의 도구로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 후신이 바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극우정당 계보입니다. 그 증거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지지 행사에서 극우 논객 지만원은 “젊은 히틀러가 신선한 연설로 22개월 만에 총통이 됐다”며 김 의원을 히틀러에 비견해 칭찬했습니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은 통상 모욕으로 간주되지만, 이 극우 모임에서는 지도자의 자질을 긍정하는 은유로 사용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해온 인물을 히틀러에 빗대어 칭송한 이 해괴한 장면은, 대한민국 보수정치 내에 극우적 감수성과 파시즘적 리더십 미학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를 드러냅니다.
보수정당의 극우화가 본격화된 시점은 일반적으로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극우 뉴라이트 세력과의 결탁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윤석열 정권이 한 일은 이러한 뉴라이트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대거 기용하며 극우사상을 정책에 반영하려 한 것입니다. 결국 국민의힘은 ‘극우화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애초에 극우라는 유전자를 지닌 채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의힘은 극우화되고 있나요?”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전제입니다. 국민의힘이 극우정당이라는 건, 그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극우를 부인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극우라 하면 사람들은 히틀러, 나치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나치(Nazi)라는 말 자체가 ‘국민(Nation)’의 줄임말입니다. 극우는 민족을 절대화하며, 민족국가를 지향하고, 국민이라는 말을 숭배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극우정당들은 ‘국민당’, ‘국민전선’, ‘국민의 파티’ 같은 이름을 달고 등장합니다.
2020년, 극우정당 미래통합당이 '도로한국당'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국민의힘’으로 재창당되었을 때, 일부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이 명칭이 일본 극우단체 ‘일본회의’가 사용한 슬로건과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일본회의 창립 5·10주년 기념식에 등장한 바로 그 문구, “국민의힘(國民の力)”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노컷뉴스, 2020.9.8) 이렇게 국민의힘은 태생부터 극우 논란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축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보수개신교입니다. 사실 이름만 보수지, 실상은 극우입니다. 극우를 부인하는 이유요? 간단합니다. 극우라 하면 사람들이 히틀러와 나치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보수개신교는 종교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실상은 극우 이데올로기의 유통기지이며, 극우정치의 선거 캠프입니다.
일제시대부터 반공을 생존전략으로 삼았던 이들은, 해방 후엔 일민주의를 국시로 삼은 이승만을 신격화하고 일제의 병영국가를 국가모델로 채택한 박정희를 기독교 문명의 수호자로 포장하더니, 이제는 윤석열을 '하나님의 뜻'으로 미화하고 있습니다.
반공·반북·반동성애·반페미니즘이라는 네 가지 정서를 성경 구절로 위장해 설교하고, 예배를 정치집회로 전환하며, 극우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 보수개신교는 더 이상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극우정치의 신정(神政)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극우 정치와 가장 밀접하게 결합하는 두 영역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단 종교와 유사 무속입니다. 통일교는 오래전부터 극우 정치와 결탁해왔습니다. 문선명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간판 아래, 반공·반북·반이슬람 정서를 전파하며 일본 자민당, 한국 보수정당과 밀접히 연결됐습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통일교계 인사들이 대통령실 행사에 초청되고, 극우 유튜버와 통일교 홍보 채널이 콘텐츠를 공유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신천지 또한 폐쇄적 교리와 위계 구조를 갖춘 집단으로, ‘참 진리를 아는 소수’라는 논리로 통제를 정당화하며 극우 정치가 요구하는 대중 통제 모델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당시,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이 신천지를 감싸거나 물타기한 것도 정치적 공생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연장선상에는 무속과 점술이라는 유사종교 영역이 있습니다. 정치는 이성과 공론의 영역이어야 하지만, 극우정치는 예언, 사주, 굿판을 정책의 정당화 수단으로 삼으며, 권위와 직감, 운명을 강조하는 비합리적 세계관을 선호합니다. 윤석열 정권 초기에 불거진 무속인 ‘건진법사’의 국정개입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대한민국 극우 정치가 합리성 대신 주술적 권위에 기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들은 민심보다 계시를, 공론보다 은밀한 예언을, 비판보다 복종을 택합니다. 결국 통일교·신천지·무속은 외양만 다를 뿐, 모두 극우 정치가 필요로 하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폐쇄적 진리 독점, 권위에의 복종, 조직적 선동, 비이성적 카리스마 정당화. 이들은 극우의 철학이 아니라, 극우의 도구이자 정서적 무기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님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순수성에 대한 집착보다는 포용력 있는 행보 아닐까요?”라는 질문은, 마치 물(자유민주주의)과 기름(파시즘)을 동시에 담는 만능 주전자가 국민의힘에 의해 발명될 수 있다는 착각에 가깝습니다. 그 ‘포용력’이란 이름의 혼종은 결국 파시즘의 탁류입니다. 무속과 극우, 통일교와 선거, 신천지와 정당이 얼싸안는 정치를 ‘포용’이라 부른다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사유의 사교 정치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포용을 말하고 싶다면, 우선 당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부터 ‘포용’하는 연습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